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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들 성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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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및 전략적 의의 == 켄들 성계의 함락은 서부성계 전선 전체에 걸쳐 장기적인 파장을 남겼다. 두 개의 궤도조선소를 잃은 UNSA는 이후 수년간 서부성계 함선의 정비·개장 주기가 눈에 띄게 길어지는 결과를 감수해야 했다. 손상을 입은 함선들이 다시 캐스케이드 II까지 원거리 후송되어야 했기 때문에, 전선 복귀 시간이 평균적으로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 전후 분석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대목이다. 병참기지의 붕괴 역시 마찬가지로, 서부성계 각지의 함대와 지상군에 물자를 재분배하는 체계 전체를 상당 기간 임시방편으로 운영해야 했다. 이 전투는 [[670년 전쟁]] 전체를 통틀어 ISA가 거둔 가장 압도적인 전략적 승리 중 하나로 꼽힌다. 단순히 함대를 격파한 것을 넘어, 상대의 후방 생산·보급 기반 자체를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이 전투는 이후 ISA 군사 교리에서 "후방 급소 타격"의 모범 사례로 계속 인용되었다. 실제로 이 전투 이후 서부함대집단사령부는 유사한 전술을 몇 차례 더 시도했으나, UNSA가 이 전투를 계기로 후방 거점의 방어 태세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하면서 이후에는 같은 수준의 성과를 반복하지 못했다. 한편 이 패배는 UNSA에게 뼈아픈 손실이었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구조적 취약점을 자각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켄들 성계 전투는 순전한 재앙으로만 기록되지 않고, "UNSA가 결국 2년 뒤 [[베넷 항로 전투]]의 승리로 극복해낸 실패의 원점"으로 함께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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